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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제 몸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뻐근하고, 계단 오를 때마다 무릎이 시큰거리는 게 그저 나이 탓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건강검진에서 받은 혈액검사 결과지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hs-CRP라는 생소한 수치가 2.5mg/L로 찍혀 있더군요. 의사 선생님은 "만성염증 관리가 필요하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제 몸속에서 조용히 진행되고 있던 '염증'이라는 불청객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20대 여드름이 알려준 염증 체질의 경고
돌이켜보면 저와 염증의 악연은 20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제 얼굴은 화농성 여드름으로 뒤덮여 있었고, 소개팅 나가는 날이면 거울 앞에서 한숨만 내쉬곤 했습니다. 그때는 그게 단순한 피부 문제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제 몸이 이미 그때부터 "속이 곯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겁니다.
염증 반응은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이 외부 침입자나 손상된 조직에 대응하는 자연스러운 방어 메커니즘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급성염증은 상처가 났을 때 빨갛게 부어오르는 것처럼 단기간에 발생하고 사라지는 정상적인 반응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이 염증 반응이 만성화될 때입니다.
만성염증은 급성염증과 달리 수개월에서 수년간 지속되면서 우리 몸의 혈관, 관절, 장기를 조용히 공격합니다. 제 젊은 시절 여드름은 사실 피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몸 전체가 염증에 취약한 상태였다는 첫 번째 경고였던 셈입니다. 거친 식습관과 밤샘 작업으로 제 몸은 이미 염증으로 끓어오르고 있었지만, 젊음이라는 패기 하나로 그 신호들을 무시하며 살았던 거죠.
hs-CRP 수치로 본 제 몸속 염증 상태
병원에서 처음 hs-CRP 검사를 권유받았을 때는 그게 뭔지도 몰랐습니다. hs-CRP는 'high-sensitivity C-Reactive Protein'의 약자로, 우리 몸속 염증 정도를 매우 민감하게 측정할 수 있는 지표입니다. 쉽게 말해 혈액 속에 떠다니는 염증 물질의 농도를 수치화한 것이죠.
제 검사 결과는 2.5mg/L였습니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다음과 같이 해석됩니다.
- 1.0mg/L 미만: 건강한 상태로 심혈관 질환 위험이 낮음
- 1.0~3.0mg/L: 만성염증이 진행 중이며 관리가 시급한 단계
- 3.0mg/L 초과: 전신 염증이 심각하고 심혈관 질환 위험이 매우 높음
제 수치는 정확히 중간 위험군에 속했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은 이미 산화되고 있었던 겁니다. 국내 50대의 약 40%가 1.0mg/L 이상의 hs-CRP 수치를 보인다는 통계를 보고 더욱 놀랐습니다. 저만 이런 게 아니었던 거죠.
이 수치를 확인하는 순간, 제 인생 하반기의 목표는 명확해졌습니다. 바로 이 수치를 1.0 아래로 내리는 것입니다. hs-CRP 수치가 높으면 동맥경화, 심근경색, 뇌졸중 같은 심혈관 질환의 위험이 2~3배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단순히 피곤하고 몸이 뻐근한 정도가 아니라, 제 생명과 직결된 문제였던 겁니다.

내장지방이 염증 공장이 되는 이유
50대가 되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띈 변화는 배였습니다. 예전에는 조금만 운동해도 쑥 들어가던 배가 이제는 꿈쩍도 하지 않더군요. 그런데 최근에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은, 이 뱃살이 단순한 미관의 문제가 아니라 제 몸속에서 염증 물질을 쏟아내는 독소 공장이라는 점입니다.
내장지방 세포는 단순히 에너지를 저장하는 것을 넘어 사이토카인(cytokine)이라는 염증 유발 물질을 끊임없이 분비합니다. 여기서 사이토카인이란 세포 간 신호 전달을 담당하는 단백질로, 특정 종류는 전신에 염증 반응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쉽게 말해 뱃살이 많을수록 제 몸은 스스로를 공격하는 염증 물질에 계속 노출되는 셈입니다.
실제로 제가 직접 경험한 바로는, 허리둘레가 90cm를 넘어가면서부터 혈압도 조금씩 오르고 공복혈당도 정상 범위 상한선에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게 내장지방에서 분비되는 염증 물질 때문이었던 거죠. 그래서 저는 지난 수개월간 매일 아침 30분씩 숨이 찰 정도로 달리고 빠르게 걷는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근육을 움직이면 마이오카인(myokine)이라는 물질이 분비됩니다. 마이오카인은 근육 세포에서 나오는 항염증 물질로, 혈액을 타고 온몸을 돌며 염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쉽게 말해 근육이 천연 소염제를 만들어내는 셈입니다. 실제로 꾸준히 운동을 하니 체중은 5kg 정도 줄었고, 무엇보다 아침에 일어날 때 몸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항염 식단으로 염증 공장 가동 멈추기
식탁 위의 선택이 제 몸속 염증 수치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저는 식단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그동안 무심코 먹던 설탕, 밀가루, 튀긴 음식에 든 트랜스지방이 모두 염증을 부채질하는 주범이었습니다.
제가 가장 먼저 실천한 것은 강황을 식단에 추가하는 것입니다. 강황에 들어있는 커큐민(curcumin)은 강력한 항염 효과를 가진 천연 화합물입니다. 커큐민은 염증 유발 효소의 활성을 억제하여 염증 반응을 줄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저는 매일 아침밥을 지을 때 강황 가루를 티스푼 하나 정도 넣어 먹습니다. 처음엔 색깔과 냄새가 낯설었지만, 지금은 이게 없으면 밥맛이 안 날 정도입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입니다. 올리브오일에 들어있는 올레오칸탈(oleocanthal)이라는 성분은 소염 작용을 잘 해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올레오칸탈은 염증 경로를 차단하여 만성염증을 억제하는 폴리페놀 화합물입니다. 저는 매일 아침 일어나 공복에 올리브유 한 스푼을 그냥 마십니다. 솔직히 처음엔 목 넘김이 불편했지만, 이제는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등 푸른 생선의 오메가-3 지방산, 베리류의 안토시아닌, 녹차의 카테킨 같은 항산화 성분들을 의식적으로 챙겨 먹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가공육, 인스턴트식품, 탄산음료는 가능한 한 멀리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식단 변화만으로도 수개월 만에 몸이 한결 가벼워지고 아침에 눈 뜨는 게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수면과 스트레스 관리로 염증 수치 낮추기
제가 간과했던 부분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수면입니다. 잠을 제대로 못 자면 뇌의 글림파틱 시스템(glymphatic system)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글림파틱 시스템이란 뇌에서 노폐물을 배출하는 청소 시스템으로, 주로 깊은 수면 중에 활성화됩니다. 쉽게 말해 잠자는 동안 뇌가 스스로 청소를 한다고 보면 됩니다.
얼마전까지도 저는 휴대폰을 사용하느라 밤 1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는데, 최근에는 밤 11시 전에 무조건 침대에 눕습니다. 그리고 최소 7시간 이상 숙면하려고 노력합니다. 실제로 수면 시간이 6시간 미만인 사람은 7~8시간 자는 사람에 비해 hs-CRP 수치가 평균 1.5배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또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cortisol)도 만성염증의 주요 원인입니다. 코르티솔은 부신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장기간 높은 수치가 유지되면 면역 체계를 약화시키고 염증을 악화시킵니다. 저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매일 저녁 10분간 복식호흡과 가벼운 스트레칭을 합니다. 이 작은 습관만으로도 잠들기 전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걸 느낍니다.
건강은 더 이상 공짜가 아닙니다. 젊었을 적 여드름 흉터를 보며 과거를 추억하듯, 지금의 염증 수치를 보며 우리는 현재의 삶을 반성해야 합니다. 만성염증을 다스리는 것은 단순히 오래 살기 위함이 아니라, 남은 인생을 얼마나 맑고 온전한 상태로 살 것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저는 오늘도 올리브유 한 스푼을 마시고, 운동화 끈을 묶고, 밤 11시 전에 불을 끕니다. 이것이 제가 제 몸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50대를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제 나름의 생존 전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