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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마음의 병, 공황의 그림자
제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 친구들이 골목에서 딱지치기를 하고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해맑게 웃던 그 나이에 저는 이미 공황장애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무슨 스트레스를 받았길래 그런 병이 생기느냐"고요. 하지만 제 유년 시절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있었습니다. 집안이 급격히 기울자 마음이 약해지신 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가셨고, 무려 2년 동안이나 생사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엔 너무나 큰 상실감이었죠. 그러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집에서 아버지를 마주했을 때, 저는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한 달도 채 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매일 밤 어머니와 고성을 지르며 싸우셨고, 결국 다시 짐을 싸서 나가버리셨습니다.
이런 과정이 10년 넘게 반복되었습니다. 몇 년 만에 불쑥 나타나 집안을 풍비박산 내고 다시 사라지는 아버지, 그리고 남겨진 누나와 저를 먹여 살리기 위해 악착같이 일터로 나가야 했던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저는 늘 잔뜩 위축된 아이로 자랐습니다. 스스로는 그것이 스트레스라고 인지하지도 못한 채, 제 몸과 마음은 이미 한계에 부딪혀 공황장애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죠. 성인이 되면서 그 고통에 무뎌진 줄 알았지만, 간혹 찾아오는 공황은 어릴 때보다 더 강하게 저를 옥죄어 왔습니다. 결국 제 마음의 문은 점점 더 굳게 닫혔고, 어느샌가 저는 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깊은 우울증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워낙 어릴 적부터 위축되어 지내왔다 보니 주변 사람들은 그저 내성적이고 어두운 사람인 줄로만 알았고, 저 또한 그런 제 모습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청년기를 보냈습니다.
처음으로 쏟아낸 속마음
저는 성인이 되고부터 갑자기 갈수록 예민해지고 사나워졌고 그런 제 모습에 어머니께서 조심스럽게 권유하셨습니다. 아는 정신과 의사가 있으니 상담을 한 번 받아보지 않겠느냐고요. 사실 부모님 입에서 정신병원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저는 배신감과 함께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상처를 받았습니다. '내가 미친 사람처럼 보이나' 싶은 생각에 화도 났지만, 어머니의 걱정을 잠재울 수 있다면 따르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반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생전 처음 정신과에 방문하였습니다.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도 나지 않는 아늑한 공간에서 간호사가 건네준 수많은 문항이 적힌 종이를 채워 나갔고, 마침내 의사 선생님과 마주 앉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제게 전문적인 용어를 섞어가며 여러 이야기를 해주셨지만, 사실 그 내용은 지금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가슴 속에 평생 잊지 못할 장면으로 남은 것은, 선생님이 던진 단 한 마디였습니다. "무엇이 본인을 그렇게 힘들게 하나요?" 저는 누구에게도 제 속마음을 터놓아 본 적이 없었기에, 당연히 입이 떨어지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한마디에 제 마음의 빗장이 풀려버렸습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한 사람을 만난 것처럼, 저는 십수 년간 가슴 깊은 곳에 켜켜이 쌓아두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혼자서만 앓아온 공포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마음 깊은 곳에 있던 모든 말을 쏟아내자마자 저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기묘한 해방감을 맛보았습니다. 가슴에 뻥 뚫린 구멍 사이로 시원한 가을바람이 숭숭 지나가는 듯한, 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속 시원함은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마음의 짐을 나누는 용기
의사 선생님의 최종 진단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스트레스 조절 능력이 약해져 있다"는 것이었고, 약물 치료를 권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날 이후로 병원을 다시 찾지 않았고 약도 먹지 않았습니다. 이미 치료법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나의 아픔을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깨달은 것이죠. 사실 공황장애와 우울증은 뇌 내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하며, 현대 의학에서는 약물 치료와 인지행동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함께 실행되어야 할 것은 자신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밖으로 꺼내어 놓는 용기입니다.
우울증에 빠진 분들은 흔히 "내 마음을 이해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거나 "말해봐야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고립시킵니다. 저 또한 그렇게 믿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날 제가 경험하였듯, 나의 슬픔을 타인에게 쏟아내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마음의 무게는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여러분의 고백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내주는 공감과 따뜻한 격려가 제 마음의 치료제가 되어주었고, 그로 인해 저는 이제 그 옛날 어두웠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지금 마음의 짐이 너무 무거워 주저앉고 싶으시다면, 부디 저처럼 그 짐을 누군가와 나누어 보시길 바랍니다. 마음의 짐을 내뱉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당신을 고통은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할 것입니다.